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어브 아이웍스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1901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 시티에서 [[프리지아(유럽)|프리지아]] 지역 출신 [[네덜란드]]계 이민자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. 아버지는 어브의 어머니와 재혼한 관계였는데, 이전에도 여러 번 전처와 자식들을 버리고 도망친 전적이 있었으며, 어브가 14살일 때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또다시 야반도주를 해버린다. 가장인 아버지가 도망쳐버려 가세가 기울자 어브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며 홀어머니를 부양하기 시작했다. 1919년 페스만 아트 스튜디오(Pesman Art Studio)에서 그래픽 아티스트로 취직해 일하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[[월트 디즈니]]와 처음 만났다. 어브는 월트와 함께 10년 동안 생사고락을 나누던 산 증인이었으며, 찰스 민츠의 계략으로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현장을 떠났을 때 유일하게 월트의 곁에 남은 사람이었다. 특히 [[미키 마우스]] 단편의 제작 과정에서 하루 작화 매수 700여장을 그리는 경이로운 속도를 자랑했다. 그러다가 1930년 즈음부터 더욱 [[완벽주의자]]로 변해가는 월트의 지시에 항의하여 그와 두 차례 언쟁을 벌이다 시네폰을 만든 팻 파워스와 협의를 하면서 독립하여 '어브 아이웍스 스튜디오'를 세워 [[MGM]] 배급으로 , , 등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기도 했다. 하지만 전부 졸작이라는 혹평을 받아 상업적 실패를 거두고 하청업체로 전락했으며 [[루니 툰]] 단편 4개를 하청 제작해주기도 했다. 1940년에 다시 디즈니로 돌아와 촬영기술 책임자로 일하면서 제로그래픽 프로세스, 멀티플레인 촬영기법 등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기법 형성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. [[앨프리드 히치콕]]이 연출한 영화 <새>에서 새들이 모여드는 장면도 어브가 맡은 애니메이션 효과 중 하나. 1960년대엔 WED 엔터프라이즈에서 일하면서 디즈니 테마파크 개발에도 협력하였으며, 1971년에 버뱅크에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. 1989년 [[디즈니 레전드]]로 추서됐지만 [[월트 디즈니]]의 이름에 가려져 알려지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며 월트 디즈니에 대하여 애증을 가진 듯 하다. [[스티브 잡스]]와 [[스티브 워즈니악]]의 관계와 비슷한 셈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